산봉우리

06 여름 지리산 종주(화엄사~벽소령) -1

자연인206 2006. 9. 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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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져만 가는 하늘만큼 멀어져 가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지리산 종주(화엄사~대원사)를 혼자서 다녀왔습니다.

혼자서 무슨 재미로 그것도 산행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그때마다 저는 "자유로운 시간을 즐길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KTX 개통으로 출발시각이 조정된 10시50분 용산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구례구역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22분

지리산행을 위해 차에서 내려 역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흥정을 서두르는 택시기사들의 몸부림이 뜨거운 곳이기도 합니다.(택시나 콜벤이용시 화엄사 또는 성삼재까지 1만원/인)

 

 

노고단 성삼재로 가신다며 같은 택시에 합승했었던 어느 부부께서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선경유지로 삼았던 화엄사 계곡의 칠흑같은 어둠속에 저를 따라 같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드렌턴도 챙겨오지않았다고 해서 날이 밝을때까지 그분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불을 비추어주며 안내해주었습니다.

 

 

화엄사 매표소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이르는 길의 정중앙에 위치한 국수봉 이정표를 조금 지나면 우측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성삼재 길목 못미치는 곳까지 이어집니다.

 

어께를 짓누르는 베낭을 벗어놓고 계곡으로 달려 내려가 온몸을 적신 땀도 씻어내고 세수도 하며 잠시 쉬었습니다.

 

 

화엄사 계곡에서 시작되어 7km에 이르는 오르막 경사길도 이곳 성삼재에서 드디어 끝이 납니다.

언덕넘어 더이상의 장애물 없이 환하게 쏟아지는 하늘빛을 마주할때의 쾌감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반갑고 뿌듯하여 언덕길을 오르며 숱하게 느꼈던 고통을 순식간에 잊어 버리게 해줍니다.

 

 

약 3시간여만에 다다른 성삼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화엄사 계곡넘어로 섬진강과 구례읍 그리고 무등산자락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시 쉰 후 곧장 노고단 정상을 지나 임걸령까지 한걸음에 내달렸습니다.

갓길에 피어있는 여름꽃들을 한장씩 디카에 담으며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맛은 나홀로 산행에서 만끽하는 또다른 묘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서기만 하면 이처럼 좋은 길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지리산에서는 주능선 길을 거닐며 자주 만나게되는 풍경들 중 하나입니다.

 

 

제 입맛에는 지리산 물맛중 가장 으뜸으로 보이는 임걸령 약수입니다.

 

 

삼도봉 넘어로 지리산의 3대봉우리중 하나인 반야봉이 법명처럼 단아하게 그 자태를 풍기고 있습니다.

 

 

잰걸음으로 내달리던 여느 종주때와는 달리 이번 종주만큼은 보다 여유롭게 지리산을 만끽하고 싶어 하루를 더 계획한 터라 뱀사골 산장에서 첫날밤을 묵기로 하였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점심을 해먹고 오후내내 낮잠도 자고 뱀사골 계곡 산책도 하면서 소일해보았습니다.

 

 

산장 취사장에서 내다본 뱀사골 하늘 정경입니다.

 

 

산사람들의 적선에 길들여진 다람쥐들이 인적에 아랑곳않고 식탁주위를 맴돌며 야행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물이 풍부한 계곡주변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껍질에 빼곡하게 푸른 이끼가 갑옷처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06년 여름 지리산행의 첫날밤은 잠실과 부산에서 각각 혼자 산행을 오셨다는 분들과 각자 준비해갔던 소주를 나누며 산장 소등시간(저녁 9시)이 될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 이웃처럼 벗처럼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새벽어둠도 채가시기전에 일어나 길을 떠나는 이들의 부산한 소리도 애써 외면하며 늦잠을 푹자고 일어나 다음 숙영지로 계획한 벽소령산장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유유자적하며 혼자 산길을 걷다가 베낭속에 넣어온 과일생각을 하니 군침이 돌았습니다.

스포츠 샌들을 신고 완주한 두번째 지리산 종주경험에 비추어 볼때 여름산행에서는 이보다 더좋은 신발은 없는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등산화에 비해 발에 땀도 차지않을뿐더러 경사진 하산로에서 생기는 발밀림현상으로 발가락에 가해지는 압력에 따른 부담을 전혀 느낄수 없었기때문입니다.

 

총각셈터를 지날무렵 만난 나그네의 분주한 발걸음 보니 필시 주말산행을 나온것이 틀림없어보였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였던 연하천 산장 마당에 걸린 지리산시인의 싯귀가 참으로 의미롭습니다.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시지마시라!!"는 시인의 절규는 아마도 방문자들에 의해 점차 훼손되어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방하고자하는 간절한 애정표현이 틀림없을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올해 막 사회에 취업하였다는 초년생 2명이 준비성 부족으로 취사도구없이 산행을 온터라 쌀과 라면만 들고 난감해하고 있는것을 그냥 두고 볼수 없어 코펠과 버너를 빌려주었더니 감사인사를 얼마나 지극히 하는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연하천 산장에서 중식을 해결하고 바람이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동안 가져간 책을 보다가 벽소령산장을 향해 구름을 따라 걸었습니다 

 

 

볕이 좋은 나뭇가지에는 가을을 예고하는 잠자리들이 바람을 피해 낮잠이라도 즐기려는듯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형제봉을 이루고 있는 두개의 바위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내려가면 지리산의 남쪽 계곡들이 대양처럼 펼쳐집니다.

 

 

길가에 서있는 고목은 산을 찾는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나무 계단이 되어주면서도 모질게 생명을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두번째밤을 보내기로 한 벽소령 산장에 도착해 한적한 약수터를 찾아 간단하게 땀을 씻고 저녁 식사시간까지 산바람을 맞으며 독서를 하였습니다.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름달을 볼수 있는곳이라하여 "벽소명월"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연한빛으 노을로 물들이며 그 사이를 뚫고 베어나는 달빛과 해그림자를 따라 어둠속으로 묻혀져가는 지리산의 신비한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은 장터목 산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예약한 후 지정된 자리에 준비해간 매트리스와 침낭을 일찌감치  펴놓았습니다.

 

지리산의 요모조모를 사이사이까지 엿보는것까지 가능한 여유있는 산행계획을 진작에 잡아 실천하지않은 것이 후회스러울만큼 만족한 여정이 되었던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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