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

베트남 여행 1 - 호치민 묘역

자연인206 2009. 7. 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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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를 통털어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유일하게 승전한 나라 베트남.

 제국주의시절 프랑스 로부터 백여년 식민지로서의 설움을 겪은 역사적 교훈을 바로 새긴 덕분일까요?

우리 나라처럼 남북간의 이념대립과 분단을 경험하였지만 호치민이라는 민족영웅을 중심으로 단결하였던 베트남은 사방천지가 적국이었음에도 통일국가를 형성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베트남까지는 인천공항에서 약 4시간 30분 가량   걸리는데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1.5배로서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있는 가늘고 긴 S자형 국가로 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마주치고서북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 동쪽과 남서쪽은 남중국해와 타일랜드만에 연해 있다.

 

 

Doimoi로 불리는 베트남 공산당의 쇄신정책은 사회주의라는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도입 운영하는 베트남을 처음 접한 저에게는 제일 먼저 혼돈과 무질서한 나라처럼 보였습니다.

 

깜빡이 신호보다는 크락숀을 선호하고 역주행과 급차선변경은 예사인데다가 거리를 뒤덮고 있는 오토바이와 자전거속을 자동차 운전자들이 짜증한번 부리지않고 유유히 빠져다니는 나라였기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물이 흐르다 막히면 아무 불평없이 그냥 돌아가듯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교통흐름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는 나라인데도 여성정책은 여전히 봉건적이어서 여자들이 경제활동을 하기위해 출근하는 시간이면 남자들은 이렇게 길거리에 나와서 오토바이를 타며 시내를 배회하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경우가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베트남 민족해방운동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의 반식민지운동을 이끈 인물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호치민의 시신이 안장된 묘역과 바딘 광장입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청렴성을 잃지않아서 지금도 전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호치민 생존 당시에 건립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하는 주석궁인데 호치민은 헐벗은 국민들을 두고 이곳에서  자신만 호화롭게 살수없다며 거처를 정원사용 사택(아래사진)을 자신이 사용하고 이곳은 손님을 접대할때만 영빈관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곳이 호치민 주석이 기거하던 정원사용 사택입니다.

검소하고 소탈한 베트남 지도자의 기풍을 짐작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때 이곳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연못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은 주석궁에서 생활하는것을 거부하며 정원사 사택을 고집했던 호치민 주석을 위해 참모들이 호치민주석이 해외출장차 자리를 비운사이 몰래 새로 지어서  선물하였다고 하는 집무실이라고 합니다.

방 2개가 마련된 작은 2층 건물로 되어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집무실 옆에는 반미전쟁 당시 미군이 호치민주석을 공격하기위해 쏘았던 어른키만한 포탄탄피가 걸려있습니다. 

 

두번이나 이곳에 포탄을 쏘을 정도로 미군은 호치민주석을 집요하게 공격하였다고 하는데 공습이 시작되면 호치민주석은 뒷편 건물 우측으로 나있는 비상통로를 따라 지하동굴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질수있었다고 합니다. 

 

 

호치민 묘역 옆에는 호치민 박물관이 있어서 수많은 인파들이 방문을 하여 그의 삶을 배우고 간다고 합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호치민 주석의 유품입니다.

유리벽 넘어로 느껴지는 그의 소탈했던 이념이 각박한 세상에 물들어 버린 제 가슴을 부끄럽게 비추는 듯 했습니다. 

 

 

호치민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베트남 전통식이 가미된 점심을 먹고 다음 행선지인 닌빈 땀꼭(육지의 하롱베이라고도 불린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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