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

강화기행 2 - 보문사

자연인206 2004. 8. 2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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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로 가는 카페리 선착장은 평소같으면 무척 붐빈다고하였습니다

다행히 비가 올것이라는 기상청예보때문에 인파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배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은 꼬리를 줄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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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리호는 20여대를 족히 수용할만큼 규모가 커보였습니다

10분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은 차량 한대에 14,000원(운전자 승선료포함)  성인 한명당1500원이라고 합니다

배는 10분단위로 출발하는데 석모도에서 나오는 마지막배는 저녁 8시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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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어선들이 카페리호 주변에서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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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갈메기떼들이 배 후미를 쫓으며 승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게 날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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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 석모도 선착장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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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이정표를 따라 선착장에서 나오자 말자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후 편도 일차선 지방도를 따라 쭈욱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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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입구에는 이처럼 노점상들이 가져나온 특산품으로 재래시장을 방불캐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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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앞에 서있는 보문사  출입문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회정대사가 창건했다는 보문사는 석모도의 최대 자랑거리라고 할수있습니다

석모도 내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 도량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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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우측에 자리한 관광상품 판매점의 풍경이 정겨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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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나면 가파른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자연그대로의 흙길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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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덕길을 약 3-400미터 올라가면 이내 보문사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칠월칠석을 맞아 찾아든 관광객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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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400년이나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보문사 경내 약수터 입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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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원이라는 전통찻집인데 경내를 들어서면서 입구 왼쪽에서 손님을 손짓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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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극락대전입니다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회를 한다는 프랭카드가 덩그러니 내걸려있었는데 지나치게 시류에 편승하는 모습이 아닌가 하여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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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넣고 돌리면서 한가지 소원을 빌기도 하고 또는 소원을 써서 넣고 돌리면서 모든 소원을 빌때 쓰던 도구인 윤장대라고 합니다

땅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넣고 윤장대를 올려 놓았으며 화려한 팔각정자형태입니다

아랫부분은 팽이 모양으로 뽀족하게 깍아 잘 돌아갈 수있게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모양을 얹었습니다

윤장대는 고려 명종3년에 자엄대사가 세운것이며 신라 경문왕 10년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용무사는 불교전경신앙의 표본이 되고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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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불사 접수처인데 절에 가서 숱하게 보아온 서명한 기와장들이지만 정작 저처럼 서명을 한 기와장을 이고있는 사찰을 아직은 보지못하였습니다

무슨까닭으로 전국의 사찰에서 불심으로 기와 불사를 한 불자들의 기와장이 사찰 지붕에서 관찰할 수 없는지 참으로 궁금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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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범종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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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은 극락전 왼쪽 산밑자락에 다소 조용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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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한 보문사는 한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때 사용했던 맷돌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보문사 맷돌은 크기가 지름 69 Cm, 두께 20 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 배 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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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석실앞 큰 바위틈에 자라고있는 이 향나무는 밑동 지름이 2.1미터이며 높이 1.2미터 부위의 둘레가 3.2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나무의 생긴 모습이 마치 용트림을 하고있는 듯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1.7미터 높이에서 원줄기는 동서 양쪽으로 갈라졌는데 동쪽것은 둘레가 1.3미터이고 서쪽것은 둘레가 1.5미터라고 합니다

6.25동란중에 나무가 죽은것같이 보이다가 3년후에 다시 소생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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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 사원이라고 합니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안에 불상들을 모셔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셧습니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때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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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단위로 법당에 들어 불공을 드리는 모습들이 쉼없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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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에 모셔진 불상들입니다

어떤 의미로 모셔졌는지 알지못하지만 아주 경건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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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극락전앞에서 내려다본 서해의 다도해 풍경입니다

흐린날씨탓에 멀리까지는 보이지않았어도 신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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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위에서 내려다본 진입로 풍경입니다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발길로 진입로는 분주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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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에 늘어선 항아리들도 크기별로 반듯하게 줄을 지어서서 마치 수도승처럼 엄한 규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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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뒤에 보이는 적가산 중턱의 눈썹바위에는 보문사 마애석불이 모셔져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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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불을 둘러보기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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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대리석으로 계단을 잘정돈하여 놓았는데 이동하기는 편하였지만 그속에 숨어있는 수고로움과 비용을 생각하면 이렇게 편한 길을 조성하는데 소요되었을 엄청난 예산을 불우한 이웃들에게 집행하였더라면 하는 혼자만의 희망을 되뇌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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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무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입니다

불상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정병을 든 관음보살이 연꽃받침위에 앉아있습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진 양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 자가 새겨져있습니다

보문사는 관음보살의 성지로 중요시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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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 석불로 가는 길은 바위를 깍아서 만든 아주 좁은 외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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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던 길은 이내 불공을 드리려는 불자들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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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불좌상의 전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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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펴놓고 쉼없이 불공을 읊조리는 불자들로 자리는 만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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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불상 앞에서 뒤돌아 본 바다쪽 풍경입니다

이런 풍치속에서는 가만히 숨쉬고 있기만 하여도 수도승처럼 맑은 영혼을 얻을 수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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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문사 경내로 내려와서 공양실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양념이라고는 일절없는 식단이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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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보문사 경내에서 다시한번 뽀얀 안개에 휩싸인 바다를 바라보다가 민머루해수욕장으로 가기위해 하산했습니다

이처럼 한번씩 산사를 다녀가면 불공을 드리지는 않아도 마음이 정돈된것같은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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