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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투어 11 - 이태리 로마

자연인206 2007. 12. 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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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로마에 있는 바티칸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면서도 세계에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 입니다.

 

 

바티칸 시국이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된것은 1929년 2월 로마의 산 조반니인라테라노대성당에서 이탈리아교황청 사이에 교환된 라테란협정에 따라 성립되었습니다.

 

 

이 협약은 가톨릭이 이탈리아의 유일한 종교이며 바티칸시국의 성립 및 교황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협약이며, 또 다른 하나는 결혼을 교회의 통제 하에 두며 학교교육에서 가톨릭 종교과목을 의무화하는 것을 인정하는 정교협약()이었다. 이 두 개의 의정서로 이탈리아 통일 이후 계속된 국가와 교황청의 대립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박물관을 들어가는 검색대를 통과하면 매표소가 나오고 여기서 티켓을 구매해야지만 입장할수있습니다.

 

 

입장권을 제시하고 박물관으로 들어서게되면 제일먼저 만나게되는 피냐(솔방울)의 정원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카도릭에서 솔방울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모양입니다.

 

 

미켈란 젤로가 그린것으로 알려지는 시스틴소성당의 천정벽화 천지창조에 대한 해설을 들은 후 잠시 기념촬영시간을 갖고 본격적인 박물관 투어가 시작됩니다.

시스틴소성당(Capella Sistina)은 궁전의 가장 뒤에 있으며 이곳은 교황 궐위시 새 교황을 선출할 때 추기경들이 모여 선거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흉한 몰골로 저승사자의 손에 인가죽을 잡아채인채 축늘어져 있는 군상의 모습이 바로 미켈란 젤로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천지창조 벽화안에서 가장 흉한 상징처럼 보이는 대상에 자신의 실제 모습을 투영한 그의 깊은 뜻을 잠시 스쳐가는 발길속에서는 영영 이해할수없었습니다.

 

 

각종 유적과 작품이 전시된 박물관 내부는 벨 베데레의 뜰(Cortile Ottagonale)을 통해서 입장하게 되는데 18세기에는 클레멘스 14세와 피우스 6세가 수집한 조각들이 놓여있으며 바티칸 궁전의 전신인 이곳은 19세기 피우스 7세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술작품에 대한 문외한인 제눈에도 어느것 하나 예사롭지않아서 정보의 홍수속에서 느끼는 혼돈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라오콘상이라고 하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촬영대상으로 이용하는것을 보면 카도릭과 무슨 깊은 연관이나 의미가 있는듯 합니다.

이 라오콘상은 16세기초 콜로세움 인근의 티투스 목욕장 유적에서 발견된 대리석상으로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으로 큰 뱀에 묶여 고뇌하는 모습은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Laoconte)이 신에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이고합니다.

 

 

바티칸 관람때에는 소매가 없는 나시옷이나 배꼽티, 미니 스커트, 반바지, 샌들 차림의 복장은 입장이 금지되며 모자착용시 반드 탈모하여야만 별도의 주의를 받지않습니다.

 

 

 

이외에도 그리스 십자형의 넓은 방에는 4세기 때 만들어진 성 엘레나 석관이나 콘스 탄티누스 대제의 딸 콘스탄티나의 석관이 있는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이 있습니다.

 

 

또한 바티칸 박물관의 입구를 들어서 안뜰 오른쪽에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현대까지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는 회화관(Pinacoteca)과 궁전 오른쪽 2층에 있는 4개의 라파엘의 방(Stanza di Raffello)이 있습니다.

 

 

 

화려한 천정벽화 좌우 벽면에는 통일 이태리의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바티칸 성배드로 대 성당의 천년의 문입니다.

 

 

미켈란 젤로가 유일하게 sign을 한 작품으로 유명한 피에타 상이라고 합니다.

‘ 피에타’란 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에만 서명을 했을까? 여기에 두가지 이유가 전해지는데
첫째, 롬바르디아인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롬바르디아인의 작품이라고 한 데서 격분하여 서명했다는 설과
둘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있는 그리스도 얼굴과 ‘피에타’의 그리스도 얼굴이 비슷해서 자기의 작품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당 곳곳에는 일일이 그 의미를 다 접수하기 벅찰만큼의 엄청난 유물들로 가득차있습니다.

 

 

성베드로 무덤이라고 하는데 성당 가장 안쪽 대형 파이프 오르겐 가운데에 있습니다. 

 

 

 

비디오 촬영을 한참 하다가 헤어졌던 가족들을 출구근처에서 다시 만나 기념사진을 몇장 찍었는데 카메라 성능이 약한것인지 조명이 안맞는것인지 ㅠㅠ 

 

 

뒷쪽 창문이 많은 건물이 교황님께서 거주(윗쪽 우측에서 2번째)하시는 궁전입니다.  

 

 

성당 지붕에는 순교자상이 정연한 모습으로 열지어 서있습니다.

 

 

다솔이도 바티칸의 엄숨한 분위기에 차분함을 잃지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해설을 들었습니다.

 

 

다운이도 예전같지않게 막내의 어린양을 털어내고 한결 어젓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산피에트로 광장을 나서며 바티칸시국의 역사성과 숭고한 가치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게 하지못하였지만 다솔이다운이와 같이 이곳을 다녀갔었다는 추억하나를 함께 만들었다는데 의미부여를 하고 다음 행선지인 로마유적지 투어를 위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국내에서도 자동차 동호회 그룹에서 드라이브를 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는데 유럽에서는 이처럼 초미니 2인용 차량을 자주 볼수있었습니다.

도심 주차문제 및 유지비때문에 유럽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벤츠사에서 출시하여 초기에는 약3천만원대로 판매하다가 최근에는 1500만원대에 거래된다고 했습니다. 차량 길이가 워낙에 작아 왠만한 공간만 있음 간단히 주차를 할수있는 장점이 있어보였습니다. 

 

 

로마 유적지 투어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콜로세움경기장입니다.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라고 하며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습니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으며, 제정기()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의 시합, 맹수연기() 등이 시행되었습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습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답니다

 

 

콜로세움 앞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입니다.

 

 

 

고대 로마의 유적을 따라 걸으면서 로마 부흥기 당시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를 해보았는데 왠지 헛웃음이자꾸 나왔습니다.  

 

 

일찌기 공화제라는 선진적인 정치시스템을 시행하였음에도 이후 무주공산처럼 쇠락해가던 로마가 급기야 동로마,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문화는 이처럼 산산히 부서져 파편만 남는 허무한 역사로 되살아나고있었습니다.

 

 

성서에서 베드로가 죽은 성당으로 알려진곳이라했습니다.

 

 

 새턴신전, 로스트라연단,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고대 원로원이 소집되었던 쿠리아 등의 유적이 있는 포룸 로마룸입니다.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이드의 해설에 머리는 용량을 초과했는지 더이상 기억의 한계를 느끼며 다음 행선지인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광장을 향했습니다.

 

 

가르발디장군과 함께 이태리 통일의 주역이었던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입니다.

 

 

빅토리아 엠마누엘2세 기념관 앞 베네치아 광장입니다.

 

 

트레비 분수앞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습니다.

Trevi란 삼거리라는 뜻으로 이곳으로 세 개의 길이 모이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1732년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12세가 주최한 분수설계 공모전에서 우승한 니콜라 살비의 작품으로 그의 사후인 30년 만에 176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완성하였습니다.

이 분수는 100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485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 위해 복원되었으며, 17세기에 재건되어 로마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한 때 150만명에 달했던 인구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4개의 고가 수로를 건설하였는데 이로 인해 물이 풍부해지고 도시 곳곳에 분수가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 교황들에 의해 상수도를 전면 수리하게 되고 새로운 수도를 개발하여 물의 공급을 원활히 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새로운 여러 분수를 세우게 되는데 그 중 최고의 작품이 바로 이 트레비 분수라고 합니다

이 분수의 물은 아우구스투스 대제의 집정관이었던 아그리파가 건설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수로를 그대로 이용해 공급하고 있다고합니다.

 

 

이태리에서 가장 맛있는 것 3가지중의 하나는 피자,스파게티와 더불어 아이스크림입니다.

우리에게도 늘리 알려진 "본(으뜸)젤라또(아이스크림)"라는 브랜드도 그 의미는 젤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개씩 사먹어보았는데 역시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커피랑 아이스크림은 한국보다 훨씬 싸게 판매하고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들어있는 달이어서 골목마다 제 각기 멋을 부리는 성탄 츄리들로 예쁘게 장식을 해두었습니다. 

 

 

로마의 휴일"의 주 무대였던 스페인광장 입구입니다.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광장에 있는 바르카치아분수입니다.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하였다. 물에 반쯤 잠겨 있는 물이 새는 배는 베르니니가 만든 것으로 바르카치아는 '쓸모 없는 오래 된 배'를 의미한답니다.

 분수의 물은 두곳에서 나오는데 위쪽의 흘러나오는 물은 사람이 마시고, 아래쪽의 고인물은 짐승이 먹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스페인 계단이라고 하는 137개의 계단 을 오르면 삼위일체 교회인 몬티 성당 이 있으며 계단 오른쪽으로 있는 분홍색 건물은 영국시인 키이츠와 쉘리의 기념관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곧장 뻗어 있는 길은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과 쇼핑의 거리 콘도티 거리입니다.

 

 

 

로마 시내를 분주하게 오가는 미니 마을버스입니다. 승용차뿐만이아니라 비좁은 골목길 주행이 간편하게 아주 작게 제작되었습니다.

 

 

스페인광장으 끝으로 숙소로 돌아오기위해 발길을 돌리다가 발견한 로마의 노점상 군밤장수입니다.

밤송이를 멋지게 장식하여 멋과 운치로 손님을 유인하는 로마 노점상의 상술이 돋보였습니다.

 

인류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일군 고대로마의 유적을 하루종일 발로 걸으며 배우면서 느낀 점은 영원한 권력은 있을수없어도 그 권력이 이룩한 위대한 문명은 수천년 자손만대 그 후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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