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천안문과 자금성 그리고 이화원을 둘러보는것이었습니다.
자객의 은신처가 될 위험이 있다고 해서 나무를 많이 심지않은데다가 온통 돌을 이용해 바닥을 조성해놓은 탓에 한 여름 자금성 관람은 찜질방을 방불캐 한다고 하는데
요행히 우리가 방문하던 날은 가랑비가 오락가락하여 다닐만하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인근에서 하차하여 안내원을 따라 정양문(천안문 광장 남쪽에 위치한 외황성 남문-우리나라 의 남대문에 해당)을 통해 광장으로 진입하였습니다
1976년에 서거한 모택동 유체를 수정관에 넣어 모시고 있는 모택동 기념관인데 광장의 인민영웅기념탐 남쪽에 위치합니다.
인민영웅기념탑 넘어로 인민대회당(국회의사당)입니다.
인민대회당과 마주하는 광장의 동쪽에는 중국혁명박물관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내중심 광장으로 불리우는 천안문 광장인데 면적이 44만제곱미터입니다. 베이징의 세계지리상 위치가 바로 천안문 광장의 위치이며 베이징의 가장 중심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천안문은 명나라때는 승천문이라 했는데 화재로 소각된후 청나라 순치황제때에 와서 지금의 크기로 확장하고 천안문이라 했습니다. 현재 높이는 33.7미터인데 1970년에 재보수 하면서 1미터 높아진 겁니다
천안문 성벽과 정원사이 좌우로 보이는 스탠드는 천안문광장에서 치루어지는 중국공산당의 각종 의식때 중앙과 지방의 공산당 간부들이 행사를 관람하는곳이라고 합니다.
명, 청시기에 천안문은 국가대사가 있거나 축제가 있을때 황제가 조서를 반포하던 곳입니다
1949년 10월1일 모택동 주석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은 세계에 선포하였으며 손수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기발을 계양합니다. 천안문성루의 모택동주석 초상화는 매년 9월 새로 교체하여 겁니다.
자금성은 이곳 오문(午門)으로 입장해서 약1km 북쪽에 있는 북문인 신무문(神武門)문을 거쳐야만 합니다.
오문으로 입장하기 위해 성문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궁성 내부는 크게 남쪽 부분의 외조(外朝)와 북쪽 부분의 내정(內廷)으로 나뉘는데, 외조는 주로 국가적인 의식이나 행사 등에 쓰였고 내정은 황제의 집무실과 황후·궁녀 등의 일상생활의 터전이었답니다.
오문으로 들어가서 내금수하(內金水河) 위로 놓인 5개의 흰대리석 다리인 금수교(金水橋)를 건너서 태화문(太和門)을 지나면 중국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인 높이 35m, 폭 64m의 태화전(太和殿)을 비롯해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의 삼대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황궁에서 중심을 이루며 금란전이라고도 불리는 태화전 광장입니다. 이곳은 자금성에서 최대의 궁전으로 동서길이63.96m 남북길이 37.3m 높이 27.92m 이며 한백옥석 기초까지 합치면 그 높이가 35.03m에 달한다고 합니다.
태화전에서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황제가 휴식을 취하고 의식을 준비하던 장소였던 중화전내부입니다.
자금성은 72만㎡의 면적(동서 753m, 남북 961m)에 9,999간의 방(현재는 8,000여 간만이 남아 있다.)이 있기로 유명한데, 이는 갓 태어난 아기가 매일 다른 방에서 잠을 자면서 모든 방을 돌면 27세가 된다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중화전과 태화전 사이 뜰에서 어안이 벙할정도로 규모있는 건축에 감탄을 연발하며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명나라 시기에 황제가 의식을 거행하기전 예복을 갈아입던 장소로 쓰이다가 청나라때부터 매년 섣달 그믐날의 연회가 열리던곳이었으며 1789년부터는 과거시험장으로 이용되었던 보화전 내부입니다.
화재를 대비해 물을 저장해놓는 소화전이라고 합니다. 겨울철을 대비해 밑에는 아궁이 구조로 해놓은점이 인상적입니다.
엄청난 건축물의 규모에 어디서 어떤 기념촬영을 해야할지 ㅎㅎㅎ
대석조, 보화전 뒤 어로에 깔린 운룡계석입니다. 자금성 궁내 최대의 석조로 아주 정밀하며 석조의 길이는 16.75m, 폭은 3.07m 두께 1.7m 무개 200 TON에 해당하는 규모로서 9마리의 반룡과 구름이 세겨져있습니다.
황성의 내정 (內庭) 으로 가는 건청문 입니다.
내정은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황후나 궁녀들과 일상생활을 하던곳으로 건청궁,교태전,곤녕궁과 동서륙궁으로 나뉘는데 "후궁"이라고도 불린답니다.
건청궁은 내정의 첫 궁전으로서 명,청시기 황재ㅔ의 침실이며 또한 일상 정무를 처리하던 전당이기도 합니다.
건청궁 내부인데 옹정제때부터 황태자의 이름을 써서 건청궁의 정대광명이라는 액자안에 숨겨두고 내무부에 밀지를 두었다가 황제가 죽은 후에 개봉하여 밀지와 실물을 맞추는 태자 밀건법을 실시했다고합니다.
1948년 건륭황제는 황권의 상징인 옥쇄 25개를 이곳 교태전에 보관하였으며 교태전 동서 양쪽에 중국과 서방의 시계를 대표하는 자명종과 물시계를 배치하였답니다.
황성이 번창할 무렵 이곳에는 시녀 9천명과 내시 1천명을 포함한 황실가족들이 모여살았다고 하는데 1만명 이상이 족히 살고도 부족함이 없을듯한 이곳을 조성하기위해 14년간 100만 명의 인부가 이 공사에 동원되고 벽돌 1억 개와 기와 2억 개라는 천문학적인 건축자재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넘쳐나는 관광객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뿐입니다.
문짝하나 하나에도 갖가지 섬세한 문양과 장식이 새겨져있어 황실의 위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금성에서 유일하게 나무와 조경을 감상할수있는 황제의 개인 정원 어화원입니다.
어화원의 명물 연이백입니다. 두그루의 측백나무 고목이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자라다가 만나서 한나무처럼 엉켜있는 형상인데 특이한점은 아랫부분에 확보된 저 공간은 북경 중추선에 가로 놓여져있다는 것이랍니다.
어화원의 랜드마크는 이 퇴수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멋진곳입니다.
맨위의 어경정을 받치고 있는 이 기암괴석은 모두 자연석으로 당시 최고의 석자재였다고 하며 어느 강에서 파내어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미로 조성해놓았다고 합니다.
이 어경정에서는 제후비빈들이 칠석이나 중추절이면 매번 이곳에 올라 풍경을 구경하고는 했답니다
퇴수산 맞은편에 위치한 만춘정은 건축물의 윗모양은 하늘을 본따서 둥글게 하고 아랫부분은 땅모양을 따서 네모나게 만들어놓은것이 특징입니다.
천안문을 시작으로 오문을 거쳐 신무문까지 지나오는 동안 중축선만을 따라 둘러보고 사진 촬영하며 이동했는데도 약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성의 둘레를 따라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폭 52m, 깊이 6m의 해자 통자하(筒子河)가 둘러싸고 있으며, 해자의 안쪽에는 또다시 높이 9m의 담이 가로막고 있어서 외부에서의 침입이 매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금성의 해자를 인공으로 건설하며 나온 흙들을 모아서 쌓은것이 뒷편에 보이는 동산이라고 합니다.
자금성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이동한 곳은 자금성 인근에 있는 인력거 투어였습니다.
자전거에 인력거를 달아서 약 20여분간 둘러보는 북경의 뒷골목 풍경입니다.
우리나라 한옥 보존지구처럼 북경의 뒷골목도 화려한 시내의 풍속과는 달리 흐름한 과거의 시계속에 멈춰서있는듯 보였습니다.
북경의 4대 특식은 북경오리,샤브샤브,태가촌,북한식이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인 태가촌입니다.
태가촌은 중국소수민족중의 하나인 태족의 전통음식을 맛볼수있는 곳으로서 작은 경극을 함께 관람할수있는 무대를 마주하고 식사를 할수있는곳입니다.
공연이 끝나자 태족아가씨가 붉은색 실끈으로 손목을 묶어주며 축복을 기원해주는 그들의 전통의식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북경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이화원의 조감도입니다.
이화원 매표소 입구입니다.
이화원은 북경 서북부의 해정구에 위치한 정원 공원이자 궁전입니다.주로 60m 높이의 만수산과 쿤밍호에 많은 공을 들여서 공사를 하였답니다. 이화원의 면적은 2.9평방킬로미터이고 이중에 3/4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쿤밍호는 2.2평방킬로미터를 차지하며, 사람을 동원해서 바닥을 파낸 완전 수작업 호수입니다. 파낸 흙은 만수산을 쌓는데 사용되었으며 7만 평방 미터의 공간에 궁과 정원 그리고 고전적인 건축을 살려낸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1750년 건륭제 재위 15년에 착공된 이화원은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영프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수난을 당했고, 모조리 약탈 당한 뒤 1900년에도 의화단의 운동 때도 8개국의 서양 열강에 의해 공격당하였으나 다행히도 완파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뒤 1886년과 1902에 서태후에 의해 재건되어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주로 이용되었다고합니다.
1998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는데 유네스코는 중국의 조경과 정원예술의 창조적인 예술을 빼어나게 표현하였다고 선언하였답니다.
사슴 뿔을 단 용의 머리에 몸통에는 비늘이 덮여 있고 꼬리는 소의 꼬리에다 다리는 말의 다리처럼 생긴 악인을 잡아간다는 상상의 동물인데. 이걸 '麒麟(기란)'이라고 하며 중국인들은 '치린'이라고 한답니다.
뒤로 보이는 다리가 지춘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이곳은 사면이 물이며 그 옆은 관상용 돌들로 꾸며져 있는데 이화원 에서 경치를 구경하기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해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 호�의 얼음은 이 곳부터 녹기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봄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화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인공호수 곤명호입니다. 얼마나 큰지 건너편 호수끝이 안보일정도인데 등뒤로 보이는 만수산은 곤명호를 파면서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라고 합니다. 주로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활용했던 우리 민족과 달리 중국인들은 인공적으로 토목공사를 많이 하며 자연을 개척했던것이 독특한 차이로 느껴졌습니다.
서태후가 비가와도 호수를 바라보며 산책할때 주로 이용하기위해 조성했다는 1.6km 거리의 회랑입니다. 사람이 워낙 붐비고 비까지 내리자 일행들은 이곳 관람을 포기하자며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기념사진만 아쉽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여걸 서태후 ...
생전 대륙을 호령하던 그녀도 죽어서는 결국 대를 이은 섭정으로 나라를 망친 장본인이라며 중국인들의 지탄을 한몸에 받는 처지로 전락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당대에 만들어놓았던 이화원은 연인원 수백만명 해외 관광객을 유인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으니 이또한 아이러니가 아닐수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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