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골프투어
대학시절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로 다짐했던 선후배들과 같이 중국 상하이로 지난 3월22일부터 25일까지 골프투어를 다녀왔습니다.
치열하게 젊음을 사르며 살았던 세월로부터 20여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나름대로 자기분야에서 전문가로 변신하여 살아가는 동창들과 해외 원정여행을 같이하는 것도 참 즐거운 맛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도착 첫날 저녁은 상하이 푸서지역에 위치한 서울리아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인근 북한식당에서 들쭉술을 반주삼아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디카를 깜박하고 숙소에 두고 가는 바람에 마침 저녁공연을 하던 북한 복무원(종업원을 현지에서 일컷는말) 들의 깜찍한 장면들을 담아오지못했습니다.
북한식당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삼겹살을 주문했는데 복무원들이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고기를 다 구워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준다는점과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하는 김치맛이 입안에서 살살녹을 만큼 감칠나는데 1개를 주문하면 서비스로 1개를 무료로 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소주(쑤저우)지역에 위치한 삼양골프장이라는 곳에서 첫 라운딩을 가졌습니다.
골프장이 큰 호수옆에 있어 페어와 그린주변이 대부분 해저드를 끼고 있어서 자칫하면 공을 물에 빠뜨리기 일쑤였습니다.
겨우네 연습도 하지않고 골프백에 먼지를 가득 쌓아놓고 있다가 간만에 가진 라운딩이다보니 스코어가 엉망이었지만 다행히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기록하는 행운을 얻어서 기념으로 담아왔습니다.
라운딩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강소성(지앙쑤성)에 있는 서기 1502년경에 조성되었다는 졸정원을 관람하였습니다.
졸정원은 중국말로 '주워정위안'이라 하며, 쑤저우시 동북로 178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지앙쑤성은 위로는 산둥성과 아래로는 상하이에 닿은 성으로, 면적은 우리 나라와 비슷한 크기이지만 인국가 7500만 명에 달해 우리 나라보다도 훨씬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황해가 넓게 펼쳐져 있고, 성도는 난징[南京; 남경]으로 난징은 중국 7대 고도중 하나로, '육조[六朝]의 명승지', '십조[十朝]의 도시'로 이름이 나 있다.
면적은 5,200 평방미터의 거대한 원림이며 동원, 중동원, 서원, 주거 건물로 나뉘는데 주거건물은 현재 위안린박물관 전시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동부는 밝고 명쾌하게 트여 있고, 평평한 산등성이와 먼 산, 소나무 숲과 초원, 대나무 마을과 굽이져 흐르는 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광은 란쉐탕, 주이윈펑, 푸롱씨에, 텐추안팅, 수샹관등이 있습니다.
졸정원은 명대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중앙 관직에서 좌천하여 지은 것인데, 졸정원이라는 이름은 스스로를 형편없는 관료라고 자학해서, 拙(졸렬할 졸) 政(정사 정)자를 사용해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오랜만에 함께 기념촬영도 해보았습니다.
왕헌신에게는 망나니 외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주색잡기를 밥먹듯 했다고 한다.
오래지 않아 왕헌신이 죽자 그나마 훈계하던 아버지가 없어진 외아들은 제 세상을 만난듯이 매일 도박과 음주를 일삼았다.
건축학을 전공했던 규성이 선배님은 인도에 깔아놓은 돌들을 보며 "무질서속의 조화"론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마다 불규칙한 선을 가진 다른 모양의 돌을 이용하였음에도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자아내게한 정렬기법이 정원 산책로의 또다른 감상미를 더해주었습니다.
고저녁한 대숲길과 분재정원을 지나 대표적인 중국 고대정원을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푸서 지역에 있는 오리엔탈 골프클럽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라운딩에서도 매 홀마다 엉망이던 샷이 15번홀(파4)에서 버디를 기록하여 체면은 겨우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짝퉁 시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상가가 짝퉁마켓이었는데 온갖 상품들이 버젓이 유명상표를 달고 염가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Bally 가방 한개를 400위안(한화로 약 5만원)기념으로 장만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전에 발맛사지샵에 들렸습니다.
요금은 한시간에 약 5천원가량 하였는데 마사지 전후 발을 씻겨주고 한시간 내내 마사지를 해주는데 무척 시원했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매일이라도 받고 싶을정도였습니다.
세째날 저녁식사는 중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사업에 성공하여 상하이 푸동에서 정착한 후배 정한기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먹었습니다.
동원참치 본사에서 중국진출 후 운영하던 가공 공장과 직영매장을 후배가 인수하여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근 20여년만에 그것도 해외에서 맞이한 재회의 기쁨은 참으로 남달랐습니다.
한화로 약 7만원/인 가량 하는 요리라고 하는데 육질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입안에서 살살녹았습니다.
한국에서 보통 뷔페에서 제공되는 참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반가운 동창들의 방문에 후배는 최고 특급 요리를 주방장에게 특별히 지시하여 턴테이블이 넘칠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을 내왔습니다.
요리가 얼마나 푸짐하고 고급스러웠는지 술을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도 않고 뒷끝도 깨끗했습니다.
귀국하기로 한 마지막날에도 새벽 티업을 추가로 예약하여 골프장으로 이동하던중 고속도로에 안개가 짙어지자 차량통행을 무단통제하는 바람에 약2시간 가까이 도로위에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휴일임에도 고속도로위에는 수많은 컨테이너 운반차량들이 수출물량을 선적하기위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이 중국경제의 역동성을 짐작하게 하였습니다.
함께 동행한 동창중 최고참 규성이 선배님의 멋적은 웃음속에 소탈함이 묻어납니다.
통행이 재개될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며 고속도로 넘어 평화로운 농장의 풍경을 구경했습니다.
중국인의 낙천성은 이처럼 고속도로 무단통제앞에서도 여실히 입증되었습니다.
누구하나 불평하거나 역정을 내는 사람없이 그져 아무 걱정없는 사람들 마냥 웃고 떠들며 소통이 재개될때까지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것이 더 빨리를 채근하는 우리민족과 아주 큰 차이라는것을 인정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 라운딩을 하면서 골프장 담장 넘어 마을의 공공기관으로 보이는 건물에 나부끼는 중국인민깃발이 어지러운 전선너머로 보였습니다.
중국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결에서 역사는 어떤 깃발을 마지막까지 바람에 나부끼게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