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기행 2 -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박물관 탐방 마지막 코스로 들린곳은 신현읍 고현리에 위치하는 포로수용공원유적지였습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되었습니다.
1951년 6월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명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는 300여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고합니다.
그러나 반공포로와 친공포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잔존건물 일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은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1983년 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습니다.
1.4 후퇴 당시 폭파된 대동강 철교위를 아슬아슬 타고 건너는 피난민들의 행렬을 재현해놓은 코너에서는 전쟁의 참상이 갖는 처참함과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즈음 미소간 휴전회담에서 포로신병처리와 관련하여 남북간에는 생포하여 각각 수용중이던 포로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사상전향 공작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상전향 결과 잔류희망 포로들의 숫자를 놓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던 미소 양국의 속셈때문에 포로들은 수용소안에서 서로를 살육하는 또다른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수용소 유적 공원 어느곳에서 아직도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남북전쟁의 포로희생자들의 넋이 이제는 그 철조망을 뚫고 우리 가족의 여행길처럼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돌아가 편안히 쉴 수있기를 빌면서 수용소 유적공원을 뒤돌아서 나왔습니다.
빗길속에서도 부지런히 돌아본 박물관 탐방 여정의 피로를 풀기위해 숙소로 돌아가는길에 해수온천을 즐기고 갔습니다.
거센 바람과 함께 멈출 기세도 없이 거제 역사의 아픈 눈물처럼 나리던 비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뚝 그치고 어둠속 고요처럼 잠잠해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