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

하모니커

자연인206 2004. 5. 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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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나는 길을 걷다가 하모니커 소리만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잠시라도 그 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걸어 가곤 한다

 

하모니커에는 내 성장기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두 누님들과의 추억이 베어있기때문이다

 

나와는 9살 6살 터울의 누님들은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때문에 당신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찍이 학업을 포기하고 도회지로 나가셔서

 

시골에 남아 광산일이며 농삿일을 하시던 부모님과 함께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셨다

 

누님들은 당신들이 뼈저리게 겪어오신 가난을 우리들 남동생들에게 만큼은 경험하게 하시지 않으시려고 명절날 한번씩 고향집에 다녀가실때면

 

텔레비젼에서나 보고는 하였던 도회지 아이들의 장난감과 학용품 그리고 멋진 옷가지들을 한보따리씩 장만해가지고 오셔서는 듬뿍듬뿍 나누어주셨다

 

당신들은 정작 당신들의 친구들이 말쑥한 교복차림으로 부모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를 다닐때 낯선 타향에서 남의집 살이를 하며 온갖 설움을 씹으셨을터인데도 말이다

 

그런 누님들께서도 결혼적령기가 되어 한분 두분 결혼식을 하게 되시었다

 

큰누님께서는 결혼식 전날 아침에 그동안 당신의 노력으로 알뜰살뜰 장만한 혼수를 작은 화물차에 정성껏 싣고는 우리들 가슴에 아쉬운 눈물만 남겨두고 고향집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을 떠나가셨다

 

그날 밤 나는  불꺼진 방에서 누나의 빈자리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허전함을 못이기고 급기야 누나의 체취가 남은 베게에 얼굴을 묻고 몇일간을 그렇게 새벽까지 펑펑 울어었다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곳으로 가신것처럼 ...그렇게 슬프게 이별의 아픔을 눈물로 달래었다

 

당시 나에게 서울은 한번도 가보지못한 아주 먼나라로 여겨졌었고 시집을 가면 남의 집 사람이 된다는 부모님 말씀을 자주 들어오던터라 더욱더 충격이 컷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날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3교시 수업을 준비할때였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 곧 누나의 결혼식이 서울 어느 예식장에서 시작되겠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을 쓸어내리며 수학 교과서를 가방에서 꺼내어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순간 무었인가가 책속에서 교실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기에는 만원권 한장이 편지지에  곱게 쌓여 익숙한 누나의 글씨로 나의 눈에 들어왔다

 

" 이제 누나는 먼곳으로 시집을 간다.

 

그래서 이것은 누나가 줄 수있는 마지막 용돈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학교다니면서 먹고싶은 것 있으면 맛있는것 사먹고 부모님 말씀 잘들어야한다.

 

그리고 공부 열심히해서 꼭 누나 있는 서울로 진학해야된다 알았지 ? "

 

순간 나는 그 편지지위로 눈물을 흠뻑 쏟아놓고 교실을 뛰쳐나와 혼자 밖에서 한참을 울다가 들어갔다

 

수업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나는 이 돈으로 무었을 할까 ... 수업시간내내 고민하다 결심한 하모니커를 사기위해 시내 악기상으로 달려갔다

 

그 집에서 제법 좋은 것을 골라 누나가 주신 마지막 용돈으로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모니커 위에 쇠못으로 누나의 선물이라고 새겨넣었다

 

그리고는 틈만 나면 연주법을 터득하며 누나를 추억했다

 

해질녁 뒷마루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슬픈일이 있을때나...

 

 누나가 보고싶으때나 ...

 

부모님께 꾸중을 심하게 들었을때나 ...

 

하모니커는 늘 내 주머니나 가방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나와서는 마치 누나의 그림자처럼 그렇게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하모니커를 한바탕 불고나면 가슴이 시원해지는것이 꼭 누나들로부터 푸짐한 선물이나 칭찬을 받았을때처럼 기분이 좋아지곤하였다

 

하모니커를 불고 있으면 가난때문에 늘 우리들에게는 엄한 모습만 보여주셨던 부모님들을 대신해 주셨던 누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감동이 느껴졌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누님이 계시는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되어 누님들과 언제라도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하늘을 함께 받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삶이란것이 늘 이렇게 빠듯하여 마음 씀씀이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보니 그 시절 그렇게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던 누님들 인생의 짐들만큼은

 

지금 함께 들어드리지 못하며 살아가면서도 막상 나자신은 당신들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죄스러울뿐이다

 

오늘도 하모니커를 한번 불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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