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은 이제 그만~
금요일 청계산에서 풀잎처럼님이 진행하신 [효사모 산야초 교실] 수업참관을 하느라 농장 출발이 하루 지연되었습니다.
자연애가 남다르셔서 그런지 다들 하나같이 선남선녀 ㅎㅎㅎ
우리 생활주변에도 무심히 지나쳤던 수없이 많은 식생들이
저마다 고유한 이름과 쓰임새가 있다는것을 배울수있는 참 유익했던 시간이었지요.
실속있는 4월강좌를 맛보고 나니까 5월강좌도 벌써 기대가 되더군요. ^^
신새벽 안개길을 달려서 단숨에 올라 간 농장은 마루와 다루 덕분에 잘 있었어요.
참 저 피암터널 전방 100m지점에는
신비의 도로(일명 도깨비 길)가 있는데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시점에 차를 중립에 두고 있으면
차가 마술에 걸린것처럼 거침없이 오르막으로 후진을 하는곳이 있답니다. ㅎ
지난주 오소리 사냥(?)을 한다며 2:1로 전투를 벌이다 오소리에게 물렸던 자국인데
마루(상)가 훨씬 더 심한 상처가 나있더군요. ㅡ,,ㅡ;;
그런데 어떤 처치도 해주지않았는데도 거의다 아물어가는거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은 자가면역력이 작동하여 자연치유가 되는게 틀림없는것같았습니다.
이번주에는 농장에
지난 한해 동안 괴롭히던 산짐승과 불청객들의 침입을 예방하기위해 전기철책을 설치하였습니다.
군에서 일부 시설비용을 지원해주어 약 100여만원의 자부담으로 총 600m 남짓을 전기철책으로 둘러놓았지요.
충격강도는 사람이 맨발로 만졌을때
경우에 따라 졸도까지 할 수있는 최고10,000V 전기가 순간적으로 흐른다고 하는데
문제는 저 철책에 전도성 물질(예: 풀,나무가지등...)이 닿으면 전기가 유실되어 충격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ㅠㅠ
그래서 저 울타리 주변은 수시로 제초를 해주어야만 하는 단점이 있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더덕을 조금 심어놓고
관리기로 야채와 고추 심을곳에 친환경 퇴비를 뿌려놓은 후 로타리를 쳤어요.
왠만하면 퇴비도 안주고 길러볼려고했는데 작년에 모든것이 너무 안자라서 ...ㅜㅜ
올해는 친환경 퇴비를 조금 하기로 ㅎㅎㅎ
이제 로타리 작업도 조금은 감이 와서 ㅎㅎㅎ 작업결과가 제법이지요?
로터리 작업 후 어머님이 씨를 발아시켜서 가져다 주신 고추모종을 심어보았어요.
바디나물(상)과 산달래
바랭이(상)와 속속이풀
속속이풀과 잔털제비꽃(하)
이질풀(상)과 쥐손이풀
모르면 배우고 하지만 그때뿐이고 한해도 못가 자꾸 잊어 먹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가지씩 새로 배우다보면 기억에 남는것이 늘어나기는 하는것 보면 적자는 아닌듯합니다. ㅎㅎㅎ
올해는 봄 야채를 작년에 야채랑 수박,참외르 심었던 습한 저지대에 심지않고 오미자 농장 한켠을 할애하기로 했어요.
농사는 흙의 특성에 대해 공부를 해야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완주 박사님의 저서(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흙 아는 만큼 베푼다)를 읽다보니
기온이 낮은 봄철에는 뿌리 온도를 빨리 올려줄 수 있는 배수가 잘되고 수분이 적은 땅이 작황에 좋다는 것을 배웠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추,시금치,쑥갓,아욱을 씨로 파종해놓았는데 마침 오늘 비가 내려서 너무 잘 한것같아요.
씨감자도 찾아다 심어야하는데 사무실일이 바빠서 ...다음주에나 심어야겠어요.
참 그런데 저 곤충이름은 무었일까요?
밭작업을 하다보니 어디서 날아왔는데 건더리니 죽은듯이 ㅎㅎㅎ
고추밭을 정리하면서 꽃다지 옆에 탐스럽게 지키고 있는 수영이 눈에 띄어
처음으로 농장땅에서 발효재료를 채취해보았어요
한뿌리,두뿌리 캐다보니 ㅎㅎㅎ헉 금새 한 광주리가 되었어요.
그냥 집으로 가져오면 아파트에서 세척하는게 여간 고역인게 아닌것을 잘 알고 있다보니
물통을 3개 만들어 놓고 쪼그리고 앉아 계곡물로 씻기 시작했는데
아유~다 씻고 났더니 다리에서 쥐가~ㅎ
그렇지만 약성좋은 발효액이 되어 누군가에게 건강을 지키는데 쓰일 수 만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참을만 하더군요.
인적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서 한낮의 햇볕과 산바람을 독점이라도 하듯 혼자서 즐기며 작업을 하다가
문득 발 아래에 피어 있는 꽃다지를 보면서 사람도 저 꽃다지처럼 살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같은 땅에 한 뿌리를 내리고서 그 땅을 공유하며 꽃을 피워가는 모습이
걸핏하면 내편,네편 가르며
갈등과 반목으로 오해만로도 모잘라 급기야 싸움까지도 불사하는게 다반사인 우리민족의 현실이 부끄럽게 느껴졌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