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와의 조우 - 가을비는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는 일기예보와 함께
한낮에도 어께를 잔뜩 움추린 인파를 뒤로하고 다시 또 고향처럼 푸근한 농장으로 돌아갑니다.
몇일전 샘터에 쌓아놓고 나왔던 설거지감들을 정리해서 밥솥에 밥을 해놓고
저무는 석양이 던져준 사색이라는 숙제를 혼자서 끙끙거리며 풀다가
집사람이 챙겨준 이런저런 반찬들로 상차림을 하다보니
어느새 어둠은 캠프를 완전히 삼키고 있었습니다.
새로 산 태양열 램프로 식탁을 밝혀놓고
모닥불을 지펴놓자 마루와 다루도 그 앞에 와서 온기를 즐깁니다.
밤새 시린 냉기를 내뿜던 산중의 숲에 다시 아침햇살이 부서집니다.
새벽기온 영상3도
지레 겁을 먹고 완전 무장을 한채 자고 일어나서인지 그리 추운지를 모르는 날이었습니다.
마루와 다루는 어디를 쏘다니다 돌아왔는지 마당에서 아침식사를 달라고 시위를 하며 뒹굽니다.
이날 아침에 제일 반가웠던 소식은
여름 어느날부터인가 한종류씩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던 아름다운 소리의 산새들이
다시 또 새벽 여명속에서 들리기 시작했다는것입니다.
아침밥 뜸이 드는 동안 잠시 산책삼아서 농장을 한바퀴 둘러보았어요
해바라기와 토종오이,차조기가 씨앗을 영글어 가고 뒤늦게 탄력을 받고
한참 자라던 쌈채들이 서리에 맞서 마지막 기세로 버티고 있습니다.
가지와 고추,야콘과 단호박은 벌써 서리에 생기를 잃고 말라가고 있었어요
배추와 무우는 밑거름을 너무 주지않아서인지 큰포기도 속이 안차고 작은것은 영 형편이 없습니다.
친가와 처가에 김장배추는 고냉지 자연산 배추로 공급해주겠노라고 큰소 리쳤는데 낭패입니다. ㅠㅠ
간만에 다시 밭작업을 시작하려니까
가뭄에 다 말라죽어버린 오미자랑 고라니에게 몽땅 빼앗겨버린 콩을 다시 보자니 속이 너무 상했어요
밍기적 거리며 발효액과 칵테일을 해놓은 참이슬을 와인처럼 홀짝거리며
한가로이 가을에 몸을 맡기다가
이번주 작업목표였던 오미자밭 골 재배치를 하기위해 부직포 수거 작업을 막 시작했을 무렵
산쪽으로 깊숙하게 나 있는 밭 골짜기로 맹열히 짖어며 뛰어가는 마루와 다루가 심상치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중멧돼지 두마리가 밭쪽으로 내려오려다 딱걸린것이었지요
마루와 함께 기세좋게 달려갔다가 반격해오는 멧돼지를 보고는 꽁지빠지게 도망을 온 다루와 달리
마루는 끝까지 멧돼지와 대치하며 물러서지않고 짖었어요
멧돼지가 등을 보이고 산쪽으로 물러서면 마루 혼자 추격을 하다가
다시 멧돼지들이 반격을 하면 마루가 후퇴를 하고 ㅎㅎㅎ
그러다가 결국 멧돼지들이 사라지면서 상황은 끝이 나고 마루의 용맹성을 확인한 날이었지요
참 그런데 다루(암컷)가 저를 보면 저렇게 앞발로 제 다리를 감싸고는 메달려 서서 안떨어질려고 하는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설명좀 부탁드려요~^&^
샘터 옆에 서있는 박달나무 고목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박달나무잎이 신나무 잎사귀와 함께 동무를 하고 가을 여행준비를 하고 있네요
농장에서 맞이하는 첫 가을이어서 일까요?
산중에서 혼자 맞이하는데도 참 좋았어요 ...^&^
이번주 농장 작업의 주 목적중의 하나였던 오미자 농장 재배치 작업을 위해 부직포 수거작업을 시작했어요
산바람이 쉼없이 불어오다보니 길이 50m, 폭 2m 부직포를 혼자서 정리하는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지요.
지난 봄 가족은 물론 가까운 지인들까지 여러분 고생을 시켜가며 애써 덮어 놓았던 것이었는데 ....
하루 반나절만에 고정핀과 부직포를 모두 회수하여 정돈하는 작업을 끝냈답니다.
이렇게 나홀로 작업을 하는 불편을 통해서야 비로소 함께 하는 맞잡이 일손가치를 절실히 느낄 수 있다니 ㅠㅠ
초보 견주의 어리석음탓에 조혼을 하게된 마루와 다루는
왠만한 잉꼬부부가 부럽지않을만큼 애정이 듬뿍 느껴집니다.
임산부 다루는 힘이 드는지 양지바른 밭에서 오수를 즐기고 혼자놀기에 지친 마루는 어슬렁거리며 다루를 괴롭히러 갑니다.
부직포 제거 작업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이제 오미자를 식재할 골배치를 새롭게 하기위해
줄자와 고추끈으로 가상 라인을 그려보았습니다.
지난 봄에는 농사에 문외한이다보니
트렉트 기사님이 그어주는 골대로 심었더니 골이 새우등처럼 모두 휘어서 작업하기가 여간 불편하지않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존한 모종도 얼마되지않아서 다시 골( 2.3m 간격 )을 직선으로재배치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지요.
혼자서 하는 작업은 능률이 떨어지지만 사람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요즘은 저녁6시만 넘어면 농장에 어둠이 내리는데
특히 이때처럼 날이 갑자기 차지고 힘든 작업을 한 날은
뜨끈 뜨끈한 온돌에 등을 지지고 누워서 자고 싶은 욕심이 간절해지지요.
그래서 고마운 선배님으로 부터 황토농막을 지을때 써라며 선물로 받은 가마솥을 아쉬운대로 화로에 얹어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길속에서 나뭇가지 타는 소리를 들으며 해동청님표 무항생제 유황오리로 저녁요기를 합니다.
기온이 떨어져 밤기온이 싸늘해졌지만
태생이 추운곳이어서인지 집을 마다하고 이렇게 뱀같이 또아리를 튼채 마당 한켠에서 밤을 지새는 마루와 다루~
간만에 빗질도 해주고 진드기도 잡아주었는데 흡혈 진드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진드기 방제약을 더 자주 발라주고 뿌려주어야할까봐요 ...ㅠㅠ
샘터에도 박달나무 낙엽이 아슬아슬 메달려 대롱리고
소나무 작은가지에는 어느새 터져버린 백하수오 씨방이 구름털에 씨앗을 싣고 번식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려고 이른 새벽에 부산을 떨며 보따리를 챙기다 무심히 돌아보는 캠프 풍경들마다
가을이 흠뻑 담겨있습니다.
농장을 내려오는 산길에도...
캠프 마당에도...
어미 나무에서 이별 여행을 시작한 낙엽들이 저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바람에 몸을 싣고
저마다의 길을 향해 떠나가려고 합니다.
흙을 따라 숲속으로 ...
물을 따라 강으로 ...
사람을 따라 도시로 ...
산중에서 혼자 지내는 일상이 많다보니 이처럼 그림자를 볼 일이 참 많답니다.
표정도 말도 없는 그림자이지만
제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다보니 자신을 되돌아보게하는 시간을 갖게해주는 소중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효사모님들께서도
거울을 보듯
이 가을이 가기전에 가까운 자연속으로 가셔서
스스로 그림자를 보면서 사색을 한번 즐겨보시지않으실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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